- 130년 합창단 역사상 최초 사례
- 30대 후반 늦깎이 유학… 바리톤 전향 3년만 이룬 쾌거
삼육대 음악학과 출신 바리톤 김형구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기관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합창단(Coro dell’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의 동양인 최초 종신단원(stabile)으로 발탁됐다. 공식 입단일은 9월 7일이다.
이는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 성악가의 역량을 유럽 클래식 음악의 중심 무대에서 입증한 쾌거로 평가된다. 특히 130여 년의 합창단 역사상 아시아계 성악가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종신단원의 빗장이 열린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는 1585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의 칙서로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기관 중 하나다. 팔레스트리나를 비롯해 코렐리, 파가니니, 멘델스존, 리스트, 베를리오즈 등 서양음악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족적을 남겼다.
아카데미 소속 상임 관현악단과 합창단은 1895년 공식 창단됐다. 심포니 합창을 전문으로 하는 이 합창단은 클라우디오 아바도, 발레리 게르기예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경, 안토니오 파파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협연하며 유럽 정상급 앙상블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이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바 있다.
김형구 성악가는 2025년 5월부터 1년간 합창단의 객원 단원(Aggiunti)으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지난 7월 진행된 종신단원 선발 콩쿠르에 지원해 최종 우승자(Vincitori)로 선정되며 정식 종신단원 자격을 획득했다.
선발 과정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적 역량과 현장 대응력을 요구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차 블라인드 심사를 시작으로, 2차에서는 심사위원들의 지시에 따라 발성과 테크닉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고난도 테스트가 이어졌다. 기존 종신단원들과 함께하는 아카펠라 4중창, 고난도 초견 및 앙상블 평가 등도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김 성악가는 정확한 언어 구사와 섬세한 음악적 표현, 뛰어난 초견 능력, 단원 간 완벽한 호흡을 종합적으로 검증받았다. 심사위원장이자 합창단 지휘자인 안드레아 세키(Andrea Secchi)는 객원 단원으로 활동한 지 불과 1년 만에 종신단원으로 선발된 것을 두고 “매우 이례적인 성과”라며 찬사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성취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안정적인 경력을 내려놓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 이뤄낸 결실이기 때문이다. 삼육대 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 교직원으로 8년간 근무한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성악 본고장의 최고 명문인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Conservatorio di Santa Cecilia)에 진학해 2022년 졸업한 그는, 현지 마에스트로들의 진단을 수용해 20년간 고수해 온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과감하게 성부를 전환했다.
성부 전향 직후 움브리아주 주요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주역으로 데뷔했고 각종 오페라 오디션에서 주역으로 캐스팅되는 등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후 바리톤 전향 3년여 만에 세계적인 명문 합창단의 종신단원으로 발탁되며,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이 만들어 낸 성공 사례를 몸소 증명했다.
바리톤 김형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선 성악가로 자리매김 하겠다”며 “한국의 후배들 또한 실패나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며 당당하게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성악가는 오는 10월부터 상임 지휘자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을 비롯해 안토니오 파파노(Antonio Pappano)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호흡하며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의 2026/27 시즌 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