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총장 윤동섭) 화학과 김우재 교수팀은 인도과학원(Indian Institute of Science) Satish Patil 교수팀, 미국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 Andrew J. Musser 교수팀과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단일항 분열(Singlet Fission) 소재의 고질적 한계였던 좁은 빛 흡수 영역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안테나 매개 단일항 분열’ 분자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번 성과는 소재 고유의 초고속 광물리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태양광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적 분자 설계 원리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화학회(RSC)가 발행하는 종합화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인 ‘Chemical Science(IF 8.1)’에 6월 4일 온라인 게재됐다.
단일항 분열이란 빛 에너지(광자) 하나를 이용해 전자 상태를 두 개의 에너지로 나누어 하나의 광자가 두 개의 전자를 만드는 현상이다(그림 1). 일반적으로 열에너지로 손실되는 고에너지 광자의 활용도를 높여 단일접합 태양전지의 이론적 최대 효율(Shockley–Queisser 한계)을 약 33%에서 약 44%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발열 반응이 일어나기 위한 에너지 조건(E(S1) > 2 x E(T1))을 만족하는 ‘TIPS-펜타센 유도체’는 초고속·고효율 단일항 분열을 구현하는 대표적 유기 소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TIPS-펜타센’을 비롯한 대부분의 단일항 분열 소재는 주로 640나노미터(nm) 부근의 적색 영역만을 흡수하고 몰흡광계수 또한 상대적으로 낮아, 태양광 스펙트럼의 상당 부분인 400~550나노미터(nm)의 청록색 영역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녔다. 이는 단일항 분열 기반 태양전지 상용화의 주요 난제로 꼽힌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두 개의 펜타센 발색단을 연결하는 분자 연결체(Bridge)에 주목했다. 기존 연구에서 분자 연결체는 발색단 사이의 거리, 배향, 전자적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수동적 구조 요소로만 여겨졌다.
연구팀은 400~550나노미터(nm) 영역에서 강한 빛 흡수와 약 90%의 높은 형광 양자효율을 갖는 다이케토피롤로피롤(PDPP) 발색단을 연결 구조(다리)로 도입한 새로운 분자(P-PDPP-P)를 설계하고 합성했다. 이 연결 구조는 ▲빛을 수확하는 안테나 ▲수확한 에너지를 펜타센으로 전달하는 에너지 깔때기(Funnel) ▲두 펜타센을 연결하는 전자적 연결자의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됐다(그림 2).
연구 결과, PDPP 안테나를 선택적으로 광여기(Photoexcitation, 빛을 흡수한 물질의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라가는 현상)하면 1피코초(Picosecond, 1조분의 1초) 이내의 초고속 포스터 공명 에너지 전달(FRET)이 거의 100%의 효율로 일어나 펜타센의 단일항 여기 상태가 형성됐다. 이어지는 단일항 분열은 펜타센을 직접 광여기했을 때와 완전히 동일한 속도로 진행됨을 확인했다.
이는 안테나를 통해 빛을 흡수하더라도 소재 고유의 단일항 분열 동역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빛을 흡수할 수 있는 영역만 가시광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펜타센의 결합 수가 증가할수록 PDPP의 몰흡광계수가 협동적으로 약 3배까지 증폭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양자화학 계산을 통해 이러한 증폭 효과가 전하 이동 성분에 의한 전이쌍극자모멘트의 증가하기 때문임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펨토초(Femtosecond, 1000조분의 1초) 및 나노초(Nanosecond, 10억분의 1초) 시간 분해 흡수 분광법을 활용해 안테나로부터의 에너지 전달부터 삼중항 쌍 1(TT)의 형성(약 20피코초) 스핀 진화 과정을 거쳐 최종 삼중항 엑시톤이 생성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이를 통해 극성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화학 구조의 변경 없이 에너지 전달 속도와 단일항 분열 속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김우재 교수는 “이번 연구는 그동안 수동적 연결자로만 여겨졌던 분자 다리를 능동적인 광수확 안테나로 격상시켜, 단일항 분열 소재의 고유 성능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태양광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향후 실리콘 태양전지와 결합한 고효율 태양전지는 물론 광센서 등 다양한 광기능성 소자로 확장 가능한 일반적 분자 설계 원리를 제공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우수신진과제(과학기술정보통신부), G-LAMP과제(교육부),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 자원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