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6.05.22 11:14
- 고체산화물 수전해전지 세계 최고 수준 내구성 구현
연세대학교(총장 윤동섭) 기계공학과 홍종섭 교수 연구팀이 그린수소 생산의 핵심 기술인 고체산화물 수전해전지(Solid Oxide Electrolysis Cell, 이하 SOEC) 스택의 급격한 열화 문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SOEC 스택 내부에서 발생하는 수증기 농도와 전기화학 반응의 불균일성을 제어해, 고온·고수증기·고전류 조건에서도 스택 내구성을 크게 향상한 성과다. 연구팀은 기존 전극 소재를 바꾸거나 복잡한 촉매 공정을 추가하는 대신, 연료 공급 경로를 조절하는 수증기 분산 필터인 ‘슬릿시트(slit-sheet)’ 구조를 도입해 열화가 집중되는 영역 자체를 제어하는 독창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SOEC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고효율 수전해 기술로, 차세대 그린수소 생산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600℃ 이상의 고온에서 작동해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고, 고가의 귀금속 촉매가 필요하지 않아 청정 수소 사회를 앞당길 기술로 평가된다. 그러나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내구성’이다. 산업 운전에 필요한 고수증기 농도, 높은 전류밀도, 높은 수증기 전환율 조건에서는 스택 내부 전극이 빠르게 손상되고 성능이 급격히 저하된다. 높은 효율을 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문제가 SOEC 상용화의 핵심 병목으로 남아 있었다.
홍종섭 교수 연구팀은 이 문제의 원인이 단순한 소재 내구성 부족이 아니라, 대면적 스택 내부에서 수증기의 공급과 전기화학 반응이 한쪽으로 편향되는 구조적 불균일성에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 SOEC 스택에서는 고농도 수증기가 공급 입구에 집중되고, 이 부위에서 전기화학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 연료극 미세구조 손상이 가속된다.
연구팀은 연료극과 유로 사이에 미세한 슬릿이 패턴화된 금속 시트를 삽입해 연료 공급 경로를 다시 설계했다. 이 슬릿시트는 수증기 공급 입구 부근으로 과도하게 몰리던 수증기 공급을 억제하고, 연료와 반응이 대면적 전극 전체에 고르게 분산되도록 유도한다. 특정 부위에 반응이 집중돼 전극이 빠르게 손상되는 기존 구조를, 스택 전체가 균일하게 작동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슬릿시트 수전해 스택의 내구성 개선은 수치로 확인됐다. 50% 수증기, 고전류 운전 조건에서 기존 기준 스택은 500시간 동안 3.6%의 열화율을 보였지만, 슬릿시트를 적용한 스택은 1.2%에 그쳤다. 고전류 운전 조건에서도 연료 공급과 반응 분포를 제어하는 것만으로 열화가 크게 억제된 것이다.
상용 운전 조건에 부합하는 고수증기, 고전류, 높은 전환율 가혹 조건에서도 효과는 지속됐다. 가혹 조건에서 기존 기준 스택의 500시간 열화율은 약 8%였지만, 최적화된 슬릿시트 스택은 이를 약 2~3% 수준으로 낮췄다. 전극 소재를 바꾸지 않고도, 스택 내부 물질전달 제어만으로 고수증기 조건의 치명적 열화를 크게 줄인 것이다.
슬릿시트 수전해 스택의 장기 안정성도 입증됐다. 최적화된 슬릿시트 스택은 2,000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운전됐으며, 2,000시간 후 전압 증가는 77mV에 불과했다. 이는 기존 기준 스택이 500시간 만에 보인 전압 증가량 99mV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같은 계열의 상용 SOEC 셀을 사용한 기존 해외 연구기관 및 기업의 스택 열화율이 대체로 9~18% 수준으로 보고된 것과 비교하면, 이번 연구의 2~3% 열화율은 세계 최고 수준의 내구성 결과로 평가된다.
3차원 다중물리 시뮬레이션과 운전 후 미세구조 분석은 이러한 내구성 향상의 원인을 뒷받침했다. 슬릿시트 적용 후 기존 스택에서 나타나던 연료 입구 부근의 국부적 전류밀도 피크와 고수증기 집중이 크게 완화됐으며, 사후 미세구조 분석에서도 니켈 고갈과 연결망 손상이 획기적으로 억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SOEC 내구성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을 바꿨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SOEC 열화 연구는 주로 더 강한 전극 소재, 새로운 촉매, 고온 금속 소재 개발에 집중됐다. 그러나 대면적 스택에서는 내부 유동과 반응 분포가 불균일해지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넘어, 스택 내부의 물질전달과 반응 환경을 직접 설계함으로써 열화가 시작되는 원인을 구조적으로 제어했다. 또한 슬릿시트는 다양한 유로 구조와 대면적 스택으로 확장할 수 있는 범용적인 설계 원리이며, 향후 전극 소재 기술과 결합할 경우 성능과 수명을 동시에 높이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홍종섭 교수는 “이번 연구는 SOEC 스택 열화의 원인을 소재 자체의 한계로만 보지 않고, 스택 내부에서 연료와 반응이 어떻게 분포하는가의 문제로 재정의한 성과”라며, “슬릿시트 구조는 복잡한 소재 변경 없이도 열화가 집중되는 환경을 직접 제어할 수 있어, 고효율 그린수소 생산 시스템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실질적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연세대 기계공학과 임장현 연구원이 제1 저자로 참여했으며, 연세대 홍종섭 교수와 현대자동차 추인창 책임 연구원이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또한 연세대, 현대자동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이치큐브솔루션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 ‘선도연구센터’, ‘수소중점연구실’, ‘미래수소원천기술개발사업’의 지원받아 수행됐으며,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에너지혁신연구센터’ 지원을 함께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에너지 분야 권위 학술지인 ‘Joule (impact factor: 35.4, JCR 상위 1.4%)’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