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6.03.30 14:19
- 분자 배열 조절로 빛 에너지 제어 성공, 연구 결과 ‘네이처’지 게재
- 차세대 광전자 소재 설계를 위한 새로운 분자 연구 성과 -
연세대학교(총장 윤동섭) 화학과 김동호 명예특임교수 연구팀은 독일 뷔르츠부르크(Wurzburg) 대학 Frank Wurthner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유기 분자의 배열에 따라 빛 에너지 이동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밝혔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이나 DNA 같은 생체 고분자는 수많은 아미노산이나 뉴클레오타이드가 특정한 순서로 연결돼야만 고유한 구조와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빛과 전자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된 인공 분자 모델은 주로 두 개의 분자 단위(이합체)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모델이 실제 물질의 복잡한 광학적·전자적 기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의문이 제기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빛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염료 분자들을 여러 개 연결한 ‘폴더머(foldamer)’ 계열 분자를 새롭게 개발했다. 연구팀은 두 개의 분자부터 시작해 최대 14개까지 단계적으로 길이를 늘여가며 정밀하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분자의 길이가 증가함에 따라 빛과 상호작용 하는 성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규명했다.
특히 염료 분자가 약 4~6개 이상 연결되면 형광 특성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형광 스펙트럼이 더욱 선명해지고, 빛을 내는 효율(양자수율)은 이합체의 약 47%에서 14개 연결된 분자의 경우 최대 75%까지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분자 수 증가를 넘어, 여러 개의 여기 상태가 상호작용 하는 ‘다중 여기(multiexciton) 상태’가 형성되며 엑시톤의 생성과 이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이 결과는 기존에 널리 사용돼 온 단순 이합체 모델이 실제 고체 상태 물질의 광학적·전자적 특성을 설명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다. 동시에 분자의 길이와 배열을 정밀하게 조절함으로써 차세대 광전자 소재나 분자 기반 전자선로(supramolecular wire)와 같은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는 미세한 분자 구조 설계만으로도 빛을 흡수해 생성되는 엑시톤(exciton)의 거동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엑시톤은 빛을 흡수한 분자 내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운반체로, 태양전지, 발광소자, 광촉매 등 다양한 첨단 광전자 소자의 핵심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복잡해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공명 라만 분광법과 초고속 시간 분해 분광 기술을 활용해 분자의 길이가 증가함에 따라 다중 엑시톤 상태가 형성되고 그 거동이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했다. 이를 통해 분자의 이차 구조와 엑시톤 동역학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김동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자를 어떻게 연결하고 배열하느냐에 따라 빛 에너지의 흐름을 미리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이는 자연계의 광합성 시스템처럼 정교한 분자 배열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인공 광소자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종합 화학 분야 권위 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 최신 호에 게재됐으며, 태양전지, 인공 광합성, 고효율 발광소자 등 차세대 에너지 및 광전자 기술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