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6.01.16 14:06
- METTL3–HNF1B 조절 축 통해 췌장암을 포함한 암세포 산화 스트레스 취약성 제시
췌장암은 진단 이후 평균 생존 기간이 매우 짧고, 치료제에 대한 빠른 저항성과 잦은 재발로 인해 예후가 극히 불량한 대표적인 난치성 암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췌장암 세포가 대사 재프로그래밍과 강력한 항산화 시스템을 통해 높은 산화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암세포만의 레독스(redox) 조절 기전을 새로운 치료 표적으로 삼는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노재석 교수팀은 국제 학술지 ‘Nucleic Acids Research(IF 13.1)’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RNA에 붙는 화학적 표지인 m6A(N6-메틸아데노신)가 전사인자 HNF1B를 조절함으로써 암세포의 항산화 능력과 생존을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전사인자는 수많은 유전자의 발현을 한꺼번에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이지만, 구조적으로 약물이 결합할 지점이 뚜렷하지 않아 직접 표적화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전사인자 자체가 아니라, 전사인자를 만드는 RNA 단계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METTL3–METTL14로 구성된 RNA 메틸전이효소 복합체가 HNF1B mRNA의 3′-비번역 영역(3′-UTR)에 m6A 표지를 남기며, 이 표지가 HNF1B mRNA의 안정성과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RNA에 붙은 작은 화학적 표지가 전사인자 HNF1B의 발현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METTL3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METTL3의 기능을 억제해 m6A 표지를 줄였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HNF1B가 조절하는 글루타치온 대사가 크게 약화되며 암세포의 항산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글루타치온은 세포가 활성산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이다. m6A가 감소하면 환원형 글루타치온(GSH)은 줄고 산화형(GSSG)은 늘어나면서 산화·환원 균형이 깨지고, 암세포 내부에 산화 스트레스가 축적된다. 그 결과 암세포는 산화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세포 사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연구팀은 HNF1B의 기능을 직접 낮췄을 때도, m6A 감소와 유사하게 산화 스트레스 증가와 세포 사멸이 유도되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이러한 현상은 췌장암뿐 아니라 여러 암종의 세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됐으며, HNF1B가 특정 암에 국한되지 않고 암세포의 산화 스트레스 방어를 조절하는 핵심 전사인자로 작동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동물 모델 실험에서도 METTL3 또는 HNF1B 기능이 억제된 종양은 성장이 둔화되고, 산화적 손상 지표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체내에서도 이 조절 축이 종양 성장에 중요하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이번 연구는 RNA 수식(m6A)이라는 후성전사체 정보가 전사인자의 발현과 기능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 암세포의 항산화 대사와 생존 전략이 유지된다는 연결 구조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METTL3–HNF1B 조절 축을 암의 ‘대사적 취약점(metabolic vulnerability)’으로 규정하며, 향후 m6A 조절 기전을 활용한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 개발 가능성을 제안했다.
연구를 이끈 노재석 교수는 “이번 연구는 RNA에 붙는 작은 화학적 표지가 암세포의 생존 전략을 어떻게 지탱하는지를 보여준다”며 “암세포가 의존하는 산화 스트레스 방어 체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치료 접근법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는 연세대 생화학과 박민지 석·박사 통합과정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 지원사업, 유한양행 YIP 프로그램, BK21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