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12.17 16:11
서강대학교(총장 심종혁)는 지난 11월 24일, '제15회 서강청년영화제'의 부대 행사 프로그램으로 열린 포럼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영화인의 자세’를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영화 <하루미>의 이원준 감독, 백윤석 촬영감독, 노진수 감독, 그리고 와타나베 테츠가 패널로 나서 국경을 넘나드는 영화 제작의 생생한 경험담을 나눴다
일본의 국민 배우 와타나베 테츠는 “일본 현장, 특히 거장들의 현장에서는 배우가 모니터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의 이원준 감독은 매 컷마다 모니터를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영화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뜨거운 연대감을 느꼈다.”라며 한국 영화 현장에서 느낀 특별한 감동을 전했다.
■ "나 홀로 연기 아닌 '함께' 만드는 현장... 한국 영화의 힘"
이날 와타나베 테츠는 한국과 일본 촬영 현장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모니터링 문화'를 꼽았다. 그는 "일본에서는 감독이 'OK' 사인을 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배우가 다시 찍고 싶어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반면 <하루미> 촬영 당시 이원준 감독은 매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모니터를 보여주며 '방금 연기 어땠냐'고 물어왔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감독과 배우가 하나의 렌즈를 공유하며 파트너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에 더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에 이원준 감독은 "와타나베 테츠 배우와의 첫 미팅 당시, 그가 일본어로 빼곡하게 적어온 캐릭터 분석 노트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라며, "그 신뢰가 있었기에 '원 카메라(One Camera)'로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며 찍을 수 있었다"라고 화답해 현장의 훈훈함을 더했다.
■ <란>에서 <사일런스>까지... 거장이 밝힌 ‘해외 합작의 현실’
와타나베 테츠는 자신의 데뷔작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1985)부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2016), 그리고 호주 영화 <피의 맹세(Blood Oath)> 등 풍부한 해외 합작 경험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그는 "첫 해외 작품이었던 호주 영화 촬영 당시, 첫 주에 프로듀서들이 현장을 지켜본 뒤 능력 부족을 이유로 스태프와 배우 4명을 해고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라며, "돈과 시스템을 쥔 프로듀서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서구권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감독의 예술적 권한이 존중받는다는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일런스>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대만 세트장에 일본 전통 가옥 문(미닫이)이 여닫이로 잘못 설치된 것을 보고 수정을 건의했다가 스태프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라며, "해외 합작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디테일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 이원준 감독, “후반작업비 전액을 일본 로케이션에”… <하루미> 제작 비하인드 공개
이날 포럼에서는 영화 <하루미>의 극적인 제작 비하인드도 공개됐다. 이원준 감독은 "미국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위해 아껴둔 전 재산을 와타나베 테츠 캐스팅과 일본 추가 촬영에 전액 투입했다"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이 돈을 쓰면 영화를 완성 못 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었지만, 와타나베 테츠라는 대배우와 작업할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그 무모한 선택이 영화의 운명을 바꿨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첫 미팅 당시 번잡한 호텔 라운지 대신 조용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도쿄 시내를 2시간이나 헤맸던 일화를 전하며 배우에 대한 깊은 예우를 드러내기도 했다.
■ “해외 합작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청년 영화인에게 건넨 조언
와타나베 테츠는 마무리 발언에서 "해외 촬영과 합작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통해 몰랐던 자신의 감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며 "돈이나 조건보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영화는 결국 남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해외 영화인들과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새로운 자신을 만나라"라고 격려했다.
백윤석 촬영감독은 ”카메라와 장비가 소형화되면서 적은 인원으로도 고퀄리티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라며, ”영국 유학 시절 현장 경험을 비추어볼 때, 이제는 국적과 인종을 넘어선 협력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원준 감독은 ”OTT 플랫폼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다“며,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학교나 단체의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현지의 친구를 통해 일단 저지르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한편, 이번 포럼은 글로벌 협력 시대를 맞이해 청년 영화인들에게 실질적인 가이드라인과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와타나베 테츠가 출연한 영화 <하루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한 남자의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며 국경을 초월한 배우들의 앙상블로 호평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