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9.17 09:39
- 연세대 등 국내 연구진, 다년간 관측 통해 블랙홀 주변 자기장 변화 규명
- 내년엔 한국우주전파관측망 참여로 블랙홀‘동영상 시대’ 연다
연세대학교, 경희대학교,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국내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 연구단이 M87 은하 중심에 위치한 초대질량 블랙홀의 새로운 영상을 16일 공개했다. 연구단은 M87 블랙홀에서 예상 밖의 자기장 변화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 전 세계에 산재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영상을 포착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이자 이 가상 망원경의 이름. 사건지평선이란 블랙홀 안팎을 가르는 경계를 뜻한다.
이번 영상은 2021년 관측 데이터로부터 얻었으며, 이는 2017년 인류 역사상 최초의 블랙홀 영상, 그로부터 1년 뒤 관측한 2018년 영상에 이어 3년 뒤 블랙홀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림 1 참고).
이번 연구에서는 2017, 2018, 2021년 관측을 상호 비교해서 M87 블랙홀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블랙홀 그림자로 불리는 중심부의 검은 부분과 블랙홀의 막대한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 만들어내는 고리 모양은 크기가 일정하지만, 블랙홀 주변 편광의 패턴이 시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편광의 변화는 사건지평선 부근의 자기장 구조가 시간에 따라 재배열됐거나(그림 2 참고), 시선 경로에 있는 뜨거운 플라즈마의 영향이 수년 사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결과는 블랙홀의 주변 환경이 매우 역동적임을 보여주며, 이를 규명하기 위한 추가 관측과 이론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새롭게 공개된 블랙홀 영상 촬영에는 2021년 EHT 관측에 새로 합류한 망원경인 미국 애리조나의 키트피크(Kitt Peak)와 프랑스의 노에마(NOEMA)로 인해 망원경의 감도와 영상 선명도가 향상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통해 M87의 상대론적 제트 기저에서 방출이 나오는 방향을 EHT 자료만으로 처음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또한 그린란드 전파망원경(GLT)과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전파망원경(JCMT)의 업그레이드도 2021년 데이터 품질 향상에 기여했다.
또한 이번 연구에는 한국 연구자들의 기여가 두드러졌다. 연세대 조일제 박사(한국천문연구원)는 2018년 EHT 관측 영상화를 수행한 팀 중 하나를 이끌며 개발한 영상화 파이프라인을 이번 2021년 관측 데이터 분석에도 적용해 영상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희대 박종호 교수팀은 블랙홀 관측 데이터의 편광을 정밀하게 보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이번 연구의 주요 분석 도구로 활용됐다. UNIST 김재영 교수와 이덕형 연구원은 합성 및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 영상 검증과 통계 분석을 주도함으로써, 영상 복원 알고리즘의 신뢰성을 높이고 블랙홀 주변 자기장 구조 변화 해석의 정밀도를 한층 강화했다.
EHT는 2017년을 시작으로 2018, 2021, 2022, 2024, 2025년에 M87을 관측했으며 이를 통해 지속해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특히 2026년에는 블랙홀 동영상 촬영을 위해 약 3개월 동안 주 2회씩 M87을 관측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우주청 소속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Korean VLBI Network)이 관측에 직접 참여한다. 이는 지금까지 1년 중 특정 기간에만 관측을 수행한 것과는 다른 형식이며 사상 최초의 블랙홀 동영상 촬영 프로젝트이다. 연구진은 KVN의 참여를 통해 더욱 정확한 블랙홀의 실시간 진화 모습의 포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세대·한국천문연구원 조일제 박사(EHT 활동성 은하핵 과학연구그룹 리더)는 “EHT의 지속적인 관측과 기술적 발전은 물론,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도 한국 연구진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제 KVN의 관측 참여를 계기로, 국제공동연구에서 한국이 선도적인 위치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박종호 교수(EHT 블랙홀 영상화팀 리더)는 “이번 연구에서 고리의 크기는 여러 해 동안 일정하게 유지돼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예측한 블랙홀 그림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반면 편광 패턴은 크게 변화해, 사건지평선 주변을 소용돌이치는 자화된 플라즈마가 매우 역동적이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 이론 모델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설명했다.
UNIST 김재영 교수(EHT 과학위원회 한국 측 위원)는 “EHT는 매년 망원경 증설, 장비 업그레이드, 새로운 과학적 접근과 분석 알고리즘을 더해가며 관측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시너지를 이루며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함께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제시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국제 공동 연구의 총괄책임자인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폴 타이드 박사는 “수년에 걸친 블랙홀 영상 연구는 우주에서 가장 극한 환경 중 하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더 심화시켜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총괄 책임자인 네덜란드 라드바우드 대학 소속의 미하일 얀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예측을 다시 확인함과 동시에, 초대질량 블랙홀 주변의 자기장과 제트 형성과 관련한 복잡한 물리적 특성을 드러낸 성과”라고 말했다.
KVN은 2024년부터 EHT 관측에 직접 참여했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블랙홀 동영상 촬영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KVN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다주파수 동시관측 수신시스템은 차세대 EHT의 핵심 기술로 채택돼, 현재 전 세계 EHT 전파망원경 업그레이드에 적용되고 있다. 이를 선도하기 위해 한국천문연구원은 EHT의 세 개 주파수 대역(86/230/345GHz)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수신기를 개발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끄는 한국천문연구원 이정원 박사는 “지난 10년간 KVN 3채널 수신기가 국제 밀리미터 VLBI 관측 시스템의 표준을 이끌어왔듯, 향후 10년은 새롭게 개발되는 서브밀리미터 3채널 수신기가 EHT의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Astronomy & Astrophysics 2025년 9월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