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1.03.11 13:40
- 100년을 살아오며 예술작품으로 인권과 평화의 존엄함을 증언해온 작가 -
- 3월 12일(금) 오후 1시부터 전시 개막식 및 학술행사 온라인 진행 -

연세대학교 박물관(관장 조태섭)은 2021년 3월 새 학기 첫 기획전으로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를 3월 12일부터 6월 30일까지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개막일인 3월 12일 오후 1시부터 도미야마 다에코의 예술과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온라인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와 공동으로 준비한 것으로, 시대의 야만을 고발하고 억압받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알려 온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도미야마 다에코는 192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올해 만 100세가 되는 화가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일본의 전쟁 책임 등을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 왔다. 전시는 유화, 판화, 콜라주, 스케치, 영상 등 총 17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며, 리영희, 한명숙 등의 민주화 운동가들, 이응노, 윤이상과 같은 예술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 다양한 자료도 함께 공개된다.
3월 12일 열리는 학술대회는 연세대학교 박물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도미야마 다에코와 오랜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1970년대 미술사 분야에서 영어권 국가에 제일 먼저 도미야마 작가를 알린 하기와라 히로코 오사카부립대학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한다.
이후 신지영 연세대 교수, 서윤아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다카하시 아즈사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다카기와 유야 돗쿄대학 강사 등의 도미야마 전문가들이 발표할 예정이다.
신지영 교수는 도미야마 작품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인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를 다루는 방식을 분석하며, 서윤아 연구원은 도미야마가 일본 패전 직후 그린 초기 작품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살펴본다. 다카하시 아즈사 연구원은 도미야마가 한국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인 김지하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으로 다카기와 유야 강사는 도미야마 스스로 그의 ‘기초가 됐다’고 언급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험에 대해 발표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 대해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전 이사장은 “코로나 19로 한층 단절된 한일 관계 속에서 미술작품을 통한 문화교류는 끊어진 인적 교류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기회”라며, “도미야마 작가가 예술을 통해 외치고 있는 인권, 평화의 이념은 한일 간 역사적 과제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일전쟁부터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모순의 응집과 그로부터 연유한 고통의 기억, 그를 넘어서는 연대(連帶)의 정동(affection)을 형상화한 예술세계를 이 시대의 ‘듣는 역사’의 귀감으로 삼고 싶다”고 전했다.
광복 50년을 맞이한 1995년,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개인전을 한국에서 처음 기획하고 개최했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80년대 도쿄에서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가슴 뭉클함을 다시 기억한다”며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만난 지 사반세기 만에 서울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니 많은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작가 소개
도미야마 다에코는 192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올해 만 100세가 되는 현역 화가이다.
작가는 1933년 12세에 만주로 이주해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조선,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동화되지 않는 예리한 감수성을 가지게 됐다. 이때의 경험은 도미야마가 화가로서 사회참여적인 작품을 그리도록 이끌었다.
작가는 생애를 통해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된 낮은 목소리들을 채굴하고 그들의 음성을 증폭해 전달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 시작은 현대 사회가 석유시대로 전환될 무렵인 1950년대 탄광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석탄 호황도 끝나가고 연이은 안전사고 등으로 광산 폐쇄가 이어지며 브라질로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떠나는 일부 광부들을 따라 작가는 라틴아메리카로 동행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저항 정신 가득한 제3세계 예술운동을 접한 작가는 군사독재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 상황에까지 시선을 돌리게 된다. 1970년 작가는 한국을 방문했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본 남성들의 기생관광하는 모습을 보며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변형된 모습으로 재연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후 이어진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단 사건과 김지하 구원 활동 역시 대상이 되는 개인들에 대한 연민과 연대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도달한 지점은 그들의 고난 안에서 발견된 제국주의 세계관의 변용된 모습에 대한 분노였다. 이렇게 다른 대륙과 시간대 속에 있던 김지하와 파블로 네루다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포섭되고,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지정학적 거리는 소거되며 동일한 역사적 공간 안에 놓이게 된다. 보편적 인권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이 아닌 순결한 믿음의 영역이고 결심에 따른 공리이며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 윤리적 책임이라는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후 그의 시선은 1980년 5월 광주를 거치며 한국현대사의 기원 가운데 하나인 일제의 전쟁책임 추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동북아시아 지역민들의 존엄을 파괴했던 체제에 대한 주체적 반성을 통해 신화적이고 수동적인 민족의식을 넘어 근대적 의지로 향해 이동한다. 전후 일본의 남성 화가들이 피해자로서의 자기 슬픔만을 노출시켜 작업에 반영하며 단명했던 것에 비해, 도미야마 다에코는 역사적 존재라는 인류 보편성에 기반한 작업을 통해 우리 안의 제국주의를 해체하고 있는 중이다.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전시구성
이번 전시는 제국주의 백 년을 관통하며 세계 곳곳의 낮은 목소리들을 시각 이미지로 제작해 온 도미야마 다에코의 증언을 5개의 주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전쟁의 기억
전쟁에서 지는 쪽은 목숨을 잃고, 전쟁에서 이기면 영혼의 안식이 사라진다. 애당초 전쟁은 옳고 그름의 구별을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누가 조금 더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정할 뿐이다.
작가는 전쟁의 시대 20세기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의 증언을 통해 고난을 감당하고 받아내며 견딘다는 것의 힘을 전하려고 한다. 그의 눈과 손을 통해 기술된 소외된 시대의 풍경은 현대라는 동일 시공간에 있지만 도래할 날들을 위해 현대성과 당당하게 맞서는 저항의 모습이다.
<찢긴자들> 시리즈를 통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당한 조선인 노동자의 삶을 담아내고, <바다의 기억> 시리즈를 통해 위안부 여성들의 '한'을 해원하고자 했다.
시리즈 가운데 눈여겨볼 작품은 ‘벽안의 원한-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에게 바치다’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일본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옥사(獄死)한 윤동주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후쿠오카 형무소'는 윤동주 시인이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치하에서 순수한 영혼의 자유를 지키며 사망한 젊은 시인 윤동주에게 바쳐진 작품을 통해 폭력적인 제국주의의 속성을 작가는 증언하고 있다.

<바다의 기억> 연작인 ‘남태평양의 해저에서’ 작품에는 무녀를 등장시켜 어두운 태평양 바다 아래 잠긴 ‘위안부’ 여성들의 한을 기록하며 위로하고 있다.
<20세기 레퀴엠: 하얼빈역>을 통해 어린시절을 보낸 만주의 신화와 전설을 통해 인간사회의 참상을 비판하고 <여우이야기: 벚꽃과 국화의 환영> 연작에서는 교활한 속임수의 화신 여우를 등장시켜 제국주의의 환영(幻影)을 그려냈다. <히루코와 구구쓰: 유랑예술가 이야기>를 통해 경계를 초월하여 유랑하는 예술가, 본인 도미야마를 작품에 투영시켜 제국주의와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전쟁과 전후의 슬픔-여성아티스트가 본 것> 연작을 통해서는 다양한 시대의 사건과 도상의 조합을 통해 페미니스트로서의 작가의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억과 화해 : 21세기로> 연작에서는 작가가 다뤄온 전작들의 다양한 이야기, 이미지들을 꼴라주로 연결해 갈등의 해소와 화해를 통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2. 땅 아래 사람들의 기억
지층은 시간의 퇴적이 기록된 텍스트북이다. 저 스스로 역사 존재를 실증하고, 비가시적 세계의 구조 위에 현존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 안에서 움직이는 운동의 힘은 역사적 형성의 고고학으로 남을 뿐, 결코 지상의 책에 서술되는 법은 없다.
작가는 빛 한 줄기 찾아 들어가지 못하는 그곳에서 세계의 삶을 떠받쳤지만 해체되는 과정의 결정에서도 배제됐던 사람들의 삶을 <광산에서의 드로잉: 1950년대> 작업을 통해 추적하고 증언한다.
3. 시인을 위한 기억
시인의 작업은 텅빈 지면 위에 문자만을 채워가는 작업이 아니고, 그가 이상하는 상을 재현하기 위해 없어야 할 것을 없애며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세상과의 불화는 시인이 시인으로 살아가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작가는 <김지하의 시에 부쳐 - 묶인 손의 기도>와 <또 하나의 9.11.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 시리즈를 통해 김지하와 파블로 네루다를 소환하며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이 동일한 역사 공간 안에서 공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고 있다.
4. 광주의 기억
현 세계에서 생성되는 경계선은 사회 외부선을 따라 고립되며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확산한다. 20세기 한국은 광주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나눠졌다. 그 방향선은 상하좌우 모든 곳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각자가 서 있는 사회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상대방의 위치 또한 알 수 있었다. 광주는 그렇게 하나의 사건에서 세계 자체의 좌표축이 되어줬다.
작가는 <쓰러진 자를 위한 기도 1980년 5월 광주> 연작을 통해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정의를 위한 투쟁을 증언하고 해원 의식을 이끈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5. 후쿠시마의 기억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엄청난 충격을 줬던 이유는 사고가 드러낸 직접적인 정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고 안에 내포된 문명 차원의 사상적 이유, 즉 현대 문명이 쌓아 올린 은유적 성취의 붕괴라는 상징 때문이었다. 80년 광주가 한국만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과 같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는 <바다로부터의 묵시> 시리즈를 통해 사고 이후의 일본 사회를 변형된 제국주의 시대 대동아공영권이 재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지구상의 유일한 원폭 피해 국가이면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으로 원전 세일즈를 지속했었던 일본의 청산되지 못한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과 해방에 대한 기원을 담는다.